어린 시절, 아버지의 진료실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피하던 소년은 아버지가 환자들에게 전하던 따뜻한 마음을 어깨너머로 보고 느끼며 자랐다. 그리고 이제 그는 세상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의사가 되어 그 온기를 전 세계 곳곳에 전하고 있다.
소년, 따뜻한 마음을 품은 의사가 되다
무더운 여름, 집에서 유일하게 시원한 바람을 쏘일 수 있는 에어컨이 있는 곳은 한의사였던 아버지가 환자를 진찰하던 진료실이었다.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상담과 처방을 해주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의사는 남의 아픔을 들어주고 고쳐주는 좋은 직업이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후로 다른 진로는 생각한 적이 없이 자연스레 의사가 되었습니다.”
외과의사가 된 김종익 협력의는 부산 백병원, 미국 플로리다주 클리브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 부산 소재 외과 병원을 거쳐 2012년부터 2년간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미국 공군기지 내 위치한 아프가니스탄 바그람한국병원에서 외과의로 근무하게 된다.
바그람한국병원은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사업(PRT) 보건사업의 일환으로, 코이카(KOICA)가 직접 지원하고 인제대 산학협력단과 백병원이 운영한 의료기관이다. 한국 의료진과 미군 자원봉사 의료진, 아프간 의료진과 협진하며 2008년부터 7년간 아프간 주민 23만여 명을 진료하고 2천여 명을 수술하는 등 의료 인프라가 무너진 아프가니스탄에서 최고의 의료를 제공했다. 이후 사업은 종료됐지만 김종익 협력의는 코이카의 사업과 보건의료정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코이카 글로벌 협력의사로 활동하게 된 큰 계기가 되었다.
전 세계 개도국 환자의 주치의가 되다 코이카의 ‘글로별 협력의사’ 프로그램은 개발도상국 보건의료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개발 사업 중의 하나로,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되었다. 2017년 8월 글로벌 협력의사로서 요르단으로 파견된 김종익 협력의는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국경지역인 노스 슈나(North Shuna)에 위치한 보건부 소속의 지역 2차병원(Muath Ben Jabal Hospital)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실 요르단은 중동지역 내 최고 수준의 의료진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의료 선진국’이다. 또한 국민건강보험 가입률이 높아 많은 사람들이 의료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의료 인프라는 수도인 암만 지역에 집중돼 있고,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의 대다수는 군인, 경찰, 공무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의료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변방에 거주하고 있거나 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이들에게 요르단 의료기관의 문턱은 높기만 하다.
(상단 가운데) 활동기관 의료기구 기증, (상단 오른쪽) 요르단 신규 전문의 복강경 수술에 참여한 김종익 협력의 (하단) 사우스 알-투알 보건소 '무료 진료의 날' 협력 진료 활동
이에 코이카는 2007년, 의료 혜택의 사각지대였던 노스 슈나 지역에 외래 병동을 건축해 기증했다. 이곳이 바로 현재 김종익 글협의가 근무하고 있는 곳이다.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를 포함한 다양한 전문 진료과목을 갖춘 이 병원은 입원은 물론 응급수술이 가능한 2차 의료기관으로, 의료 서비스에 소외되어 있던 요르단 주민들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김종익 협력의는 부임 후 해당 병원의 의료 환경이나 진료 행태, 수술 시스템 등의 의료 체계를 바로잡고, 기존의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요르단 의료진들과의 소통을 통한 진료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더불어, 본인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진료 방식 중 맞지 않는 것이 있다면 요르단의 현지 상황에 맞는 방법으로 바꿔나가며 현재까지 요르단에서의 의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항문외과 클리닉을 개설하여 운영 중이며, 요르단 외과전문의들의 진료와 수술에 함께 참여하여 조언을 아끼지 않는 등 현지 의료 인력의 역량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
사우스 알-투알 보건소 '무료 진료의 날' 협력 진료 활동
마법과도 같았던 ‘사우스 알-투알 보건소 협력진료’ 지난 4월, 김종익 협력의는 요르단에서 대규모 협력진료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요르단 사해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빈곤 농촌 지역 사우스 알-투알(South Al-Twal)의 지역 주민에게 무료 진료를 진행하고, 성인들을 대상으로 혈압, 혈당, 비만도 등을 측정하여 고혈압, 당뇨, 비만 등 비전염성질환(NCD)의 심각성을 알리는 협력진료 활동을 기획하여 진행한 것이다.
이번 진료 활동은 코이카의 ‘요르단 3개 지역 보건소 건립 사업’을 통해 최근 증축한 사우스 알-투알 보건소에서 진행된 협력진료 활동으로, 요르단 코이카 사무소의 지원 아래 요르단에서 활동 중인 봉사인력 전원이 모여 힘을 모았기에 더욱 뜻 깊은 시간이었다.
진료 시에는 항생제의 처방을 최대한 줄이고, 주민들에게 비타민과 철분제 등을 무료로 배포하였으며, 글을 읽지 못하는 지역주민들도 이해 가능한 홍보물을 자체 제작하여 주민들에게 건강증진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진행되었다.
코이카 봉사단원들로 구성된 디자인 팀이 제작한 제작한 비전염성질환 안내 홍보물
김종익 협력의는 “참여한 코이카 인력 모두가 능숙한 간호사와 약사로 변신한 놀라운 마법의 날이었다”며 그날을 회상했다. 함께 했던 봉사단원들의 적극적인 협조와 철저한 사전 준비가 수반되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참여한 모든 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오른쪽 상단) 활동기관 Muath Ben Jabal Hospital 동료들과 함께 (왼쪽, 오른쪽 하단) 코이카 안전집합교육
그가 머나먼 나라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글로벌 협력의사로서 계속해서 활동해나갈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요르단에 온 이후 ‘과연 내가 요르단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깊게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는 열악한 의료 환경에 놓여있는 환자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먼 곳에서 어려운 발걸음을 하는 모습, 그리고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타지에서 노력하는 코이카 봉사단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필요를 느낀다고 말한다.
“요즘에는 얼마 남지 않은 외과의사 생활을 저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서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그래야 훗날 아쉬움이 없겠죠? 한국에 계신 어머님, 호주에 있는 가족들의 기도와 응원이 큰 도움이 됩니다.”
‘내가 받은 도움을 많은 이들에게 나누며 살아가라’던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는 김종익 협력의. 그는 오늘도 여전히 저 먼 타지에서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따뜻한 의술을 펼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