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놀이, ‘미술’을 가르치는 미술 교사

뷰티플 KOICA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이보라 월드프렌즈코리아 코이카 봉사단원

 



색색의 크레파스, 물감, 도화지, 색종이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이것저것 만들던 우리네 미술 시간. 그런데 에티오피아의 상황은 달랐다. 실기 없이 글로만 배우는 미술 수업. 그것이 공립학교 미술 교육의 실상이었다.

한데 아디스아바바 히브렛피레초등학교(Hibret Firre Primary School)의 환경은 달랐다. 아이들의 예술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교실 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물감 냄새가 확 풍겼다. 아이들이 ‘게임’이라 표현할 만큼 재미있는 이보라 단원의 미술 수업. 창의력, 사고력의 발달과 더불어 미술을 통한 인격 형성이라는 더 큰 목표를 향해 진화하는 중이다.








Q. 에티오피아 히브렛피레초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파견된 과정을 알려주세요.
한국의 미술학원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막연히 해외 미술 교육 봉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 우연히 코이카(KOICA) 봉사단에 대한 내용이 제 눈에 확 띄더라고요. 제 마음을 이끄는 무언가 있어 고민도 않고 지원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2018년 11월, 코이카 봉사단 126기로 에티오피아에 오게 됐습니다.


Q. 미술 수업은 아무래도 도구나 커리큘럼 등 준비할 게 많을 것 같은데요?
에티오피아에 오기 전, 현지에 한지나 먹 같은 한국 미술 재료가 없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비해 가져왔습니다. 또 학기 초반에는 학생들과 제가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 아무래도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 언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중점적으로 연구했습니다. 퍼포먼스 미술 수업이라든지, 종이접기를 통한 게임 같은 것이었죠.





Q. 히브렛피레초등학교는 어떤 곳인가요?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예카 지역에 6.25 참전용사들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사는 ‘한국 마을(Korean Village)’에 열악한 학교가 있었는데 2005년 코이카의 교육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히브렛피레초등학교를 다시 건립하게 됐습니다. 교육을 통해 에티오피아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진정한 원조를 행하는 선택이었죠. 덕분에 학교 시설이 아디스아바바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좋아요. 약 150명의 교직원이 근무하고, 1,2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정규반에 또 300명이 넘는 수가 야간반에서 교육 받고 있습니다. 물론 학생들 대부분은 6.25 참전용사 후손들입니다.


Q. 에티오피아의 미술 교육 환경은 좋은 편인가요?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못해요. 에티오피아 미술 수업 평가를 해 보니, 실기는 아예 제외된 이론 위주의 커리큘럼만 존재했습니다. 듣고 쓰며 외우는, 책 속 지식만 가득한 미술 수업이 재미있을 리가 있나요? 이런 상황 속에 실기 위주의 방과 후 미술 교실이 열린다는 공지를 하니, 아이들의 호응은 엄청났고 제 수업을 들으려는 열기가 뜨거웠습니다.





Q. 단원님이 진행하는 방과 후 미술 교실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히브렛피레초등학교의 미술 수업은 두 가지로 운영됩니다. 정규과정의 미술 수업은 이론만으로 진행되고 제가 맡은 방과 후 미술 수업은 실기 위주입니다. 세 팀으로 나누어 팀당 10~15명의 학생으로 구성했고, 팀당 일주일에 두 번씩 수업합니다. 이론을 아예 안 가르칠 수는 없는데, 초반에는 언어 문제로 인해 진행이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무조건 퍼포먼스 수업만 했죠. 풍선을 불어 던지고, 분필로 그림을 그려 게임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동 미술 교육은 무작정 종이와 물감을 주고 “그림 그려!”라고만 해서는 안 되거든요. 아이들의 창의적 생각과 마음을 미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미술 교육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입니다. 때문에 질의응답 과정은 필수죠. 결국 학생들과 의사소통을 잘해야 돼요. 다행히 제 암하라어 실력이 조금씩 늘어 “이건 뭐야?”, “뭘 표현하려 이렇게 그렸니?” 같은 질문 정도는 가능하게 되었답니다. 이제 좀 마음이 놓여요.





Q. 실기 위주의 수업이라면 주로 어떤 것들을 가르치며, 또 이를 통해 학생들의 어떤 부분을 성장시키고 싶으신가요?
지난주에 했던 수업을 예로 들게요. 커다란 도화지에 학생 한 명을 뉘어 놓고 그 애의 몸을 본뜬 다음, 얼굴이나 옷 같은 것은 조원들끼리 상의를 해서 창작한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또는 동그라미, 세모, 네모 같은 도형을 다양한 크기로 잘라 아이들에게 연상되는 것을 그리라고도 했지요. 그러자 아이들은 삼각형을 모자나 지붕으로, 동그라미는 얼굴이나 공 등으로 변형해 표현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통해 창의력과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싶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어떤 한 학생이 그림을 잘 그렸다 싶으면 그걸 따라 하는 경향을 보여요. 그런데 그때 만약 혼자서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아이가 있으면, 잘했고 못했고를 떠나 일부러 칭찬을 많이 해 줍니다.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 서서히 아이들의 독창성이 길러지게 된답니다. 인체 그림, 뼛조각, 해골 등을 본떠 그리는 수업도 했어요. 가능한 다양한 방면의 예술에 노출시키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아이들이 특별히 흥미를 보이거나 참여도가 높았던 부분이 있다면요?
솔직히 모든 수업에 열성을 보입니다. 실기 수업 자체가 없다 보니, 아이들 흥미가 최대치랍니다. 따라서 수업 태도가 나쁜 경우는 보기 힘들 정도예요. 물론 그래도 아이들이다 보니 예의범절이 부족하거나 수업에 집중 못 해 낙오되는 아이들도 있기는 해요. 처음에 암하라어가 익숙하지 않을 무렵에는 반장을 선출해 통제하도록 했더니 효과가 꽤 좋았어요.


Q. 학생들을 가르치며 가장 보람되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또 가장 힘들었던 때는요?
다른 선진국의 아이들과 달리, 에티오피아에는 그 흔한 컴퓨터 게임도 없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고 붙이는 예술 활동을 게임하며 노는 것으로 여겨 너무 재미있어 하고 즐깁니다. 그렇다 보니 매일같이 보람을 느껴요, 정규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제 수업을 듣겠다고 함박웃음을 하고 뛰어오는데, 그 모습을 보면 사명감이 더욱 증대되고요. 아무리 힘들어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답니다.
힘들었던 부분은 학기 초, 아이들이 제 눈을 속이며 도둑질했던 일입니다. 눈물이 날 만큼 실망감이 컸어요. 하지만 당시 아이들은 교실에 있는 물건을 가져가는 게 크게 나쁜 일이라는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전 아이들에게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물건을 훔치는 건 정말 나빠. 또 이러면 다음 수업은 없을 거야.”라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그제야 아이들은 그게 얼마나 잘못된 행동인지, 심각성을 깨닫더라고요. 이제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지우개 한 조각도 제게 가져다준답니다.





Q. 에티오피아에서 미술 교육 봉사를 한 지 약 9개월 되셨습니다. 개인적으로 달라졌거나 성장한 부분이 있다면요?
아프리카에 처음 왔을 때는 다른 인종들 사이에서 낯설고 두려운 마음으로 길을 걸어 다녔는데, 이제는 모두에게 익숙해져서 어디든 편안히 다닌답니다. 또 이곳에서 동양인 여자로 살아가면서 사회적 약자들과 인종차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 생각들이 배려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단원님의 추후 계획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에티오피아는 영어 교육이 중요합니다. 8학년 국가시험의 경우도 국어 과목을 제외하고, 모두 영어로 시험을 봅니다. 하지만 여건이 안 돼 영어 수업을 못 받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래서 다음 학기에는 영어와 미술을 결합한 통합 교육을 시도해 보려 합니다. 자세한 커리큘럼은 고민 중이고요. 한 가지 더, 원래 1년이던 계약 기간이 끝나면 6개월에서 1년 정도 더 연장할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에티오피아에 더 오래 남고 싶어졌네요.

 


글 서혜원 ∥ 사진 한상무